유럽 골프의 얼굴 ‘세베리아노 바예스트로스’
세베리아노 바예스트로스 그는 잘생겼으며, 열정적이며, 허세를 부리고, 모험을 즐겼다. 특히 리커버리샷의 귀재였다.
1979년 로열리덤에서 벌어진 디 오픈 4라운드 16번 홀에서 그는 티샷을 골프장 주차장으로 보냈다.
그의 팬들은 모두가 절망했지만 그는 자동차 밑에 있는 공을 드롭한 후 주차장에서 핀에 공을 붙여 버디를 잡아내 우승했다.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티샷을 똑바로 못치는 주차장 챔피언” 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우승이 운이 아니었음을 총 다섯 차례 메이저 우승과 50차례 유러피언 투어 우승으로 증명했다.
골프장의 모든 곳이 그에겐 페어웨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epl중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너무 가난해서 클럽을 살 수가 없었다. 형이 버린 3번 아이언에서 헤드를 떼어내 막대기를 붙여 클럽을 만들었다. 공이 없어 해변의 자갈을 쳤다. 밤에 골프장에 몰래 숨어 들어가 연습을 했다.”
골프 볼모지인 스페인에서 자란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배웠다.
어둠 속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본능을 배웠고, 어디로 튈지 모를 모난 돌을 치면서 감각을 배웠던 것이다.
그는 16세인 1974년 프로로 전향해 1976년 유러피언 투어 5승에 상금왕 타이틀을 땄다.
그는 복서인 무하마드 알리와 슈거레이 로빈슨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경기했다. 스포츠중계 손오공티비
로빈슨이 상대 가드 사이로 설탕처럼 감미로우면서도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훅을 날리듯 세베리아노에게 후퇴는 없었다.
그러나 전투적인 그의 성격이 몸을 망가뜨렸다.
그는 1977년 복싱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연습벌레였기 때문에 부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드라이버에 문제가 생겼다.
드라이버샷의 불안을 리커버리샷으로 충분히 만회했다. 티샷이 훅이 나 페어웨이 왼쪽으로 가면 드로샷으로 그린에 올렸고, 슬라이스가 나면 페이드샷으로 그린에 올렸다.
벙커든, 러프든, 언덕이든, 나무위든 그는 파나 버디를 했다.
1993년 유러피언 마스터스에서 세베는 엄청난 훅을 내는 바람에 나무로 둘러싸인 수영장으로 공이 들어 갔는데 나무 틈으로 그린 근처에 공을 보내고 칩인 버디를 잡았다.
그는 1978년 6주 연숙 우승했고, 1979년 디 오픈 우승으로 메이저 챔피언이 되었다. 스포츠스타보기
1980년 마스터스에서 유럽 선수로는 처음 그린 재킷을 입었는데 그의 23세 우승 기록은 타이거 우즈가 1997년 21세에 우승할 때까지 마스터스 최연소 기록이었다.
바예스토로스는 유럽 골프의 얼굴이었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영국인인 닉 팔도보다 더 영국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는 유럽 골프의 간판격으로 유러피언 투어를 일으켜세웠고 라이더컵에도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의 경기는 드라마였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기적 같은 리커버리샷을 날리면서 살아났다.
그는 위험을 감수했고 대부분 이겼다. 그의 목표는 많은 버디를 잡는 것이었다.
그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표현하는 연기파였기에 최고의 갈채를 받았다.
또, 자신감 있게 할 말을 한 골퍼였다. 무료스포츠중계 손오공티비